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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후의 독서, 기술과 예술 사이에서

남남이루 2022. 9. 12. 01:38

혼란의 시대와 책

  나는 정보를 흐름과 인상으로 받아들이는 데만 특화되어 있어서, 단 하나의 메시지만 기억하곤 한다. 2022 국제 도서전 김영하 작가님의 북토크에서는 '책이라는 삶의 피난처'라는 메시지가 있었다. 재난 SF의 한 장면처럼 우리는 코로나 시대를 지나왔고, 김영하 작가님은 지구 유일의 기록자 같은 경건한 마음으로 코로나 발병의 첫 기사를 일기에 적었다고 했다.

 

  그렇게 시작한 우리의 재앙은 여러 불편과 상처를 지나, 낯선 것은 익숙한 것으로 익숙한 것은 낯선 것으로 만들어 버렸다. 명동이 망하고, 이태원, 홍대가 망하는 동안, 철거업과 배달업이 흥했다. 그리고 의외의 사실은 출판업이 흥했다는 것이다. 코로나 기간 동안 오히려 도서 판매량은 증가한 것인데, 이는 우리의 불안을 책에 맡기는 것이며, 작가님이 말하는 '최후의 피난처로서의 책'일 것이다.


  나는 언제 책을 읽는가를 돌이켜보면 역시 한계에 다다랐을 때였다. 자신을 지킬 때 필요한 최소한의 공격성, 공격적인 성취를 위한 경쟁력 없이 성인이 되어버린 나는 성취를 잘 하는 어떤 사람들처럼 물질과 타인의 성취 수준을 욕망하도록 스스로를 밀어부쳐본 적이 있다. 좋은 학교, 좋은 회사에 소속되면 좋은 점들을 의식적으로 찾고 이를 내면화하기 위해 노력했다.

 

  생겨먹기를 옆자리 친구보다 1점이 높고 낮고 등수가 높고 낮고, 이에 따라 어떤 시선과 평가를 받는 다는 것 자체에 큰 의미를 둘 수 없었기에 어떻게든 이유를 붙여서 성취에 대한 설명을 구구절절 해보는 것이다. 좋은 학교를 가면 엄마가 걱정을 안 해! 좋은 학교를 가면 배울 만한 사람들을 만날 확률이 높아! 좋은 회사를 가면 월급을 많이 받으니까 부모님 일을 쉬게 할 수 있어!를 외우곤 했다.

 

  그러나 시선을 외부로 돌리고자 한 노력은 오히려 자신에 대한 실망과 초조함으로 돌아왔고, 이는 매일의 성장에 집중하는 것을 방해했다. 외부를 의식할 수록 회피와 자책의 악순환이 시작됐다. 도저히 다시 시작할 용기가 나지 않을 때, 털썩 주저앉아 글쓰기와 독서를 한다. 그러면 애쓰지 않아도 일어설 수 있었다.


  글쓰기와 독서가 벼랑에서 나를 구한다면, 미술은 공허한 세상을 반짝이게 해준다. 운동은 이미 잘 하고 있다는 확신을 주는데, 마치 부스터 같다. 나이를 먹을 수록 국영수만, 공부만, 잘 해서는 인생이 고단하다- 고 느낀다. 매해 내가 지금까지 가치없다고 생각했던 것에 대한 통수를 맞는다. 그러니 인생은 계속해서 배워나가는 과정이다. 세상에 대한 배움 그리고 나에 대한 배움. 처음 태어날 때 주어진 신체 프레임에서 물리적인 방법들을 학습하고 나면, 자신의 소프트웨어에 대한 목차를 단서로 무수한 본문을 채워나간다. 핵심 주제는 나 데리고 어떻게든 살아가기이고, 나의 가치관 부터 나의 약점과 컴플렉스, 구체적인 행동 강령 등이 있겠다. 나의 어떤 모습은 인정할 수 없어 찢어버리고 싶을 만큼 밉고, 어떤 점은 형광펜으로 몇번이나 덧칠을 하고 싶을 만큼 뿌듯하다. 어떤 모습은 겹쳐쓰거나 다시 쓴다.